초등학교 동창회(상편)

한소영 0 278 03.25 02:56

내 나이 올해 서른 살. 번듯한 직장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교를 나와 다른 사람들처럼 취업을 고민하며 토익과 스펙을 쌓고 있는 그런 열정적인 대한의 남아는 아니다. 매일 같이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다.

돈이 없다보니 휴대전화도 아직 구형모델에 일 년 열두 달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며 곰팡이 핀 냄새를 풍기는 사회의 이단아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이 평생 같다고는 장담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반드시 이 세상에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도 나는 집에서 발가락 사이에 낀 때를 손가락으로 벗기며 오징어 다리를 십고 빈병을 모아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있었다. 대낮부터 방에서 이러고 있으니 우리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생명체로 보였을 것이다.

“내가 저런 놈을 낳고 미역국을 먹었으니… 내 팔자야.”

자식으로써 부모님께 이런 말을 듣는 다는 것은 치욕적이며 불효자의 표본이지만 나는 왜 이런 말을 듣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인지… 매일 같은 잔소리에 취하고 술이 부족하면 밖에 나가 빈병을 모아 슈퍼에서 새 소주를 바꿔 마시는 일이 다반사인 나는 면역되었다.

잘못된 행동과 모습이라고 수도 없이 느끼고 자책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음을 잘 알기에 오늘도 엄마의 잔소리를 안주삼아 소주를 기울인다. 오징어 다리를 씹어 먹는데 내 발가락 사이에서 나는 냄새인지 오징어 냄새인지 모를 꾸리꾸리한 향에 다시 한 번 취한다.

딩동-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아마 대출광고 또는 대리운전 문자일 것이다. 휴대전화로 시선이 향했지만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란 생각에 씹고 있던 오징어 다리를 질겅이고 있는데…

딩동-
연속으로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좀 특이한 경우다. 광고문자가 이렇게 단시간에 연속으로 올 줄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옆으로 머리를 기대어 누워 있던 나는 내 눈 앞에 놓인 휴대전화의 문자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 위치다.

‘확인해봐, 아니면 그냥 말까?’

잠시의 고민 후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손을 뻗어 봤지만 짧은 신체구조상 휴대전화를 가져올 수 없었다. 하지만 유독 긴 나의 다리에 희망을 걸로 옆으로 누워 있는 상태에서 발만 쭉 뻗어 보았다. 엄지발가락에 휴대전화가 닿는다.

내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최대한 발을 뻗어 일자로 만든 후 조심스럽게 당겼다.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휴대전화를 보며 씹고 있던 오징어 다리 맛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데 너무 무리했는지 다리에 쥐가 오는 통증을 느꼈다.

“아, 씨팍! 허벅지 땡겨!”

혼자 허벅지를 부여잡고 통증과 사투를 벌이며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아직 소주병의 반이나 남은 술병이 쏟아지고 말았다. 그 장면은 우리나라가 북한의 침공을 받아 한 겨울에 눈보라는 맞으며 힘겹게 피난 가는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악, 안돼!”

비명과 후회로 신음하고 있었지만 이미 엎어진 술, 쏟아진 삶의 낙이었다. 그렇게 힘들고 힘겹게 내 품에 안은 휴대전화는 애물단지 같았다. 한 겨울에 동파된 수도관처럼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참으며 연속으로 날아온 휴대전화의 문자를 확인했다.

‘친구, 나야 나. 동규. 잘 지네니?’

누구냐, 넌… 누군데 나의 목숨과도 같은 소주를 엎질러 버린 것이더냐. 그러면서 동규라는 이름이 머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아련한 이름… 동규? 동규가 누구지… 친구라 하면 나도 알고 있는 자일 터.

나의 삼십 년을 동규라는 이름 때문에 다시 되새기며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규라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 다음 문자를 확인해보기로 하고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으면 문자를 지워버릴 심산에서…

‘OO초등학교 나왔지, 너?’

내가 나온 초등학교 얘기를 들먹이는 것을 보고 단번에 생각이 났다.

“아, 이 새끼.”

멀리서나마 나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문자를 준 동규는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아마도 오학 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 내 심부름을 잘하던 녀석이기도 했다. 그랬던 자식이 나에게 문자를 보내는 바람에 금 같은 내 술이 쏟아졌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났지만 오랜 세월 후 연락을 닿게 된 동창생이란 생각에 반가움이 분노보다 더 컸다. 답장을 할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연락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성격에 맞지 않게 이모티콘도 사용하여 답문을 했다.

‘오랜만이네~ 반가워, 친구^^*’

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문자를 보내는 상대가 오랜 친구란 사실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었다. 답문을 보내고 다시 돌아 올 친구의 답문을 기다리며 엄한 휴대전화만 붙잡고 오 분, 십 분이 흘렀다. 이런 개썅… 아무런 대꾸가 없는 친구.

“문자 내용이 너무 징그러웠나… 어쩌지….”

나 혼자 답문의 내용이 너무 혐오스럽거나 징그럽지는 않았나 하는 걱정으로 친구가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며 제발 답장이 오길 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매일 방에만 지내는 내 처지가 너무 비참해 이번 기회에 친구를 만나 행운(?)을 얻을 기회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행운이란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나 지금처럼 비참하고 불쌍하게 혼자 소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 사회라는 곳에서 술을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는 행운이었다. 물론 이 행운은 내가 술을 얻어 마시게 될 것이란 단서가 붙긴 하지만….

딩동-
기다리고 기다리던 답문이 왔고 재빠른 확인으로 친구의 문자를 읽었다.

‘오늘 초등학교 동창회 하려고 하는데 시간 되?’

동창회? 내가 졸업한 학년의 동기들과 함께 잘 살았냐, 넌 뭐하고 사냐 하는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 그 동창회? 너무 반갑고 행복한 소식에 방안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며 발을 하늘로 향해 동동거리며 좋아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침착해야 하는 법, 한 번에 콜을 해버리면 내가 쉬운 놈으로 보일까봐 약간의 밀땅을 하기로 결심했다. 후후… 비록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지만 자존심 하나로 삼십 년을 살아온 나이기에 적절한 수위에서 밀땅을 진행했다.

‘아, 그래? 오늘이라… 스케줄 좀 봐야 할 것 같네.’

이 얼마나 다이나믹한 답문인가. 절대 한가한 사람이지 않는,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며 처참하지 않는 문자가 아니던가. 나의 문자에 동규에게서 답문이 왔다.

‘많이 바쁜가 보네. 시간이 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이 자식, 내 연기에 기가 막히게 넘어왔다. 학창시절 때는 네가 나보다 더 공부를 잘했지만 사회적으로 성숙한 나의 임기응변을 어떻게 따라 잡을 수 있겠냐. 푸하하하! 그리고 동규에게 또 한통의 문자가 왔다.

‘집에서 오징어에 소주마시고 있으면서 바쁜 척 하는 놈은 아니겠지?’

뭐… 뭐야. 이 자식, 우리 집 내방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지? 우리 집에 스파이가 있어서 내 동창들에게 나의 일상을 시시각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예측한 것일 거야.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답문을 통해 동규의 의심과 예측이 빗나갔음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왜 내심 불안하고 찔리는 것인지…

‘어이쿠, 미안하네. 어떻게 알았을까?’

인정을 함에 자연스럽게 그렇지 않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최적의 답문이라 판단되었다. 난 또 다시 나의 답문 센스에 자화자찬을 하며 방바닥에 누워 허공에 발길질을 하고 좋아했다. 나의 묘수는 중국의 삼국시대에 살았던 제갈량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느꼈다.

‘실업자냐? 킥킥킥. 그럼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알게.’

미… 친… 새… 끼…. 잡아 죽여 버릴 테다…. 나의 변명을 이렇게 분노로 이끌고 있는 놈이 아직도 존재한단 말인가… 인생의 아픔과 패배감을 주겠노라 다짐하며 두 주먹 불끈 쥐게 만들었다. 나는 영혼 없는 답문을 날렸다.

‘ㅋㅋㅋㅋㅋ.’

어라? 이 새끼 답문이….

‘ㅋㅋㅋㅋㅋ.’

고요한 내 방, 아침부터 나의 얼굴을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달구는 햇볕을 느끼며 초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느끼지 않았던 살인적인 표정이 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만나는 순간 너의 면상을 울릉도 호박엿처럼 뭉개 주리라….

또 다시 영혼 없는 답문을 동규에게 전했다.

‘어, 그래.’

나의 짧은 대꾸에 동규가 일문의 답변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분노에 불타올라 그 자리에 몇 십 분을 앉아 있었다.

“끄아아!”

나는 괴수의 울음소리를 내며 앉아 있다 만세 동작을 하며 동규에게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결심하고 있었을 바로 그때, 내 방문이 열리며 엄마가 들어와 내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팍!

“아야! 왜?!”
“어디서 소리를 질러, 깜짝 놀라게!”
“엄마는 왜 내방에 들어와서 그래?!”
“내방? 야, 이자식이. 네가 월세를 내니 아니면 밥값을 벌어오니? 어디서 내방 타령이야!”
“엄마는… 힝.”
“그럴 시간에 나가서 돈이나 벌어!”

잔인한 우리엄마. 나도 나가서 돈 벌고 싶어요, 이 험한 세상에서 나라에 애국하며 세금내고 싶어요. 연금도 들고 예쁜 마누라 만나서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장의 위치에서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세상이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스펙도 없고 대학도 다니지 못한 나에게 지금의 항변을 배부르고 정신 못 차린 남정의 변명이라 느낄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다. 엄마가 내 방에서 나가고 나는 울고 싶었지만 울지 못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참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자 한통이 왔다.

딩동-

‘이번 동창회 때 열 명은 모이겠네.’

동규의 문자다. 열 명? 누가 모이는지 궁금해 누구누구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남자는 전우성, 두빈, 강오동, 차대현, 송이국, 나, 너.’

오호라, 이 녀석들과 아직도 연락이 되었구나. 모두 반가운 이름들이었다. 특히 두빈이의 경우 나와 초등학교 때 참 절친한 친구였는데 중학교를 다른 곳으로 입학하며 연락이 뜸해진 친구였다. 반가운 이름들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남자 동창생들이 있다면 여자 동창생들도 궁금해 졌다.

‘여자들은?’
‘여자는 이호리, 안가인, 공아라.’

헐…. 여자 동창생 이름을 받고 제일 눈에 가는 이름이 한 명 있었다. 공아라… 나와 초등학교 때 육 년을 함께 같은 반으로 있었고 매년 짝꿍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며 나의 장난을 모두 이겨내야 했던 친구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찾았다. 몇 권 없는 책장에서 앨범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앨범을 꺼내자마자 공아라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육학년 사반이었으니… 어디 있는 거야.”

그리 많지도 않은 동창생들의 사진을 한 명씩 찾다보니 잊고 살았던 친구들의 얼굴에 많은 추억들이 남아 있었음을 느꼈다. 왜 이 많은 친구들을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이었을까. 왈가닥이었던 이호리라는 친구도 보였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 붙여진 별명인 벌구 전우성의 얼굴도 보였다. 벌구는 말 그래도 ‘입만 벌리면 구라’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찾던 공아라의 사진을 찾았다. 남자 같은 짧은 단발머리에 까만 피부, 조금 조숙했던 탓에 얼굴의 반을 덮고 있는 여드름을 지닌 친구. 아라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매스꺼움….

“아, 이 자식. 넌 평생 독신주의자로 남아야 할 것을….”

엄숙하고 정숙한 분위기로 조용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며 그 어떠한 신에게 구원을 부탁하며 아라의 삶이 풍족하고 나름 행복해질 수 있도록 기원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라보다 내가 났다는 생각을 혼자 품으며…

나는 동규에게 다시 답문을 했다.

‘기다려지네. 이따가 보자.’
‘참, 회비 삼만 원씩이야. 장소는 따로 문자할게.’

뭐라고? 회비? 삼… 삼만 원…! 적지 않은 돈이다. 부담이 되는 돈이다. 나를 죽이려는 회비 금액이다. 빈병을 모아 소주 한 병을 얻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하루 종일. 그런데 삼만 원의 회비를 가지고 오라고? 자살충동이 느껴졌다.

“안 돼! 삼만 원이라니! 으아악!”

머리를 쥐어짜며 삼만 원을 만들어 낼 고통과 시름하는데 내 방문이 또 다시 열렸다. 우리 엄마가 소파에 있던 쿠션을 들고 와서 고뇌 속에 괴로워하는 나의 면상을 정면으로 강타한다. 퍽!

“이 자식이, 또 소리 질러?!”

이럴 때 우리 엄마가 나를 낳아 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원망을 느낀다. 밀림에 사는 사자는 힘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역에 대해 표시를 한다. 그리고 그 영역에 무단으로 침입한 침입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다.

나는 지금 우리 엄마의 영역에서 무단으로 침입해 살고 있는 침입자와 같은 위치인 것 같다. 독립이 필요했지만 현실성이 부족한 무단 침입자…. 정신 차리고 나가서 일명 노가다라는 일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신이시여, 저에게… 삼만 원을 주소서….

엄마의 공격에 자빠져 있던 나는 거실에 보이는 어떠한 곳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누워 있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거실을 응시했고 말없이 거실을 바라보고 있는 날 이상하게 쳐다본 엄마가 내가 바라보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이번에 엄마가 아버지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명품 가방이 놓여 있었다. 퍽!

“이거 건들면 넌 죽어!”
엄마의 손에는 아직 쿠션이 있었고 잔인한 쿠션 타격은 또 다시 나의 면상을 강타했다. 정녕… 저 명품 가방을 팔아서라도 삼만 원을 얻지 못한단 말인가. 엄마의 일격에 다시 좀비처럼 쓰러진 날 보며 엄마가 말한다.

“돈 필요해? 왜?”

엄마의 물음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의 손을 잡고 사정하듯 말했다.

“사실은… 동창회… 아니, 친구가 병원에 입원했데. 그래서 병원비가….”

퍽!

“이 새끼가 정신을 못 차려. 백수가 돈이 어디 있다고 병원비를 빌려줘?”
“친한 친구라….”

퍽!

“친구가 밥 먹여 주냐?”
“내가 도움도 받았었고….”

퍽!

“야, 말 나온 김에 한 번 해봐? 너 사고 치면 그 돈 누가 다 해줬어? 지난달에 동네슈퍼에서 외상값도 엄마가 다 해줬잖아!”
“그렇지….”

나는 어떠한 변명과 궁색도 내지 못하고 엄마와의 립 베틀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도무지 잘한 것이 없어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젠장… 그냥 동창회에 가는데 회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망할 핵존심 때문에 변명을 대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터벅터벅 내 방으로 돌아서며 엄마에게 알겠다는 신호로 손을 흔들었다. 동규에게 나는 이번 동창회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문자를 해야 했다. 괜히 동창회 때문에 내 가정 경제가 깨질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휴대전화를 들고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만지작 만지막. 그러면서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를 힐끔 쳐다보니 엄마도 나를 힐끔 쳐다보며 날 의식하는 듯 했다. 그 순간 아인슈타인처럼 빠른 두뇌회전이 됐다.

‘오호라, 엄마가 내 눈치를 보고 있네. 나에게 미안한 것인가? 그렇다면….’

짧은 나만의 생각을 한 뒤, 계속해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과 누가 봐도 불쌍해 보이는 행동으로 엄마의 모성애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삶의 패배자이며 현실에 안주해버리고 만, 인간 말종… 그리고 인생의 잉여자.

나의 살짝 훌쩍이는 콧물 연기까지 더해지며 나의 뒷모습을 힐끔힐끔 지켜보는 엄마에게 최대한 불쌍함을 표현하려 애를 쓰기 시작했다. 뭔가 떨어지길 은근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엄마가 조금씩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 하는 듯 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먼저 말을 하거나 행동을 멈추게 된다면 이런 노력은 모두 수포가 될 터.

“아… 아들.”

엄마가 나를 부르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부동의 자세로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며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내 뒤에서 엄마가 엉덩이를 들어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와 느낌이 났다. 나는 조금 더 크게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아들, 엄마가… 엄마가 너무 심했지?”

당연하죠, 엄마가 정말 너무 심했어요. 제가 빚보증을 서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대신 군대 다녀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하나뿐인 아들에게 이러시면 곤란하죠. 정말 엄마에게 실망 많이 했습니다. 어서 저에게 구원의 용돈을 주세요.

“아… 아니야, 내가 바보 같아서… 흑흑.”

적절한 울음이었다. 사실 그 울음은 그렇게 오래 앉아 있으니 다리가 저리고 하품이 나와 흘른 눈물이었다. 절대 슬프거나 아파서 우는 눈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내 입으로 그런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 엄마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어머, 너 지금 우니?”
“아니, 흑흑.”
“남자 놈이 왜 울어? 얼마가 필요한데?”

그렇지! 그렇게 진작 나오셨어야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의 연기력에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았고 나는 스스로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나의 속마음을 들킬 수 없었다. 다시 진정하고….

“엄마, 내가 너무 무능력해요. 나이 삼십이나 먹고… 나도 힘들어요.”
“어이쿠, 엄마가 너에게 정말 미안하구나.”

이제 엄마는 나에게 90퍼센트 넘어 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총알을 채워 오늘 있을 동창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우리 아들이 지금은 이렇게 백수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꼭 큰일을 할 남자라고 믿어.”

지당하신 말씀.

“그러니 엄마가 너무 심하게 한 거 신경 쓰지 말고. 미안하다, 아들.”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순간 모욕감과 패배감을 주셨으니 위자료로 합의금을 지원해 주세요. 그럼 더 이상 이 일에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필요한데?”
“뭘?”
“아까… 병원… 비.”

됐다, 됐어! 엄마가 나의 연기에 넘어왔다. 엄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 손가락 세 개를 엄마 얼굴에 들이대며 고개를 숙인 채 훌쩍이고 있었다.

“헉, 그렇게나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빌려달라고 해서….”
“친구 누군데? 엄마도 아는 친구니?”

내가 너무 쌔게 말했나보다. 엄마가 이렇게 당황하며 질문 할 줄이야. 하긴 가정주부가 삼만 원이라는 돈이 적게 보일리가 없지… 미안한 마음에 펴고 있던 손가락 세 개중 하나를 접으며 이거라도 좀 부탁한다고 했다.

“알겠어. 엄마가 네 통장으로 보내줄게. 하지만 이거 반드시 다음 달 안으로 갚아야 한다.”
“고마워요, 엄마. 흑흑.”

오케이, 이것으로 나의 작전과 연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절대 비밀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부탁들 나는 꼭 그렇게 하겠다며 고마움의 포옹으로 엄마의 사랑에 보답했다. 엄마는 징그럽다며 떨어지란다. 다음 달까지 빈병을 열심히 모으면 충분히 이만 원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제 동창회 회비 삼만 원 중 부족한 만 원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지난번부터 소주를 사기 위해 미리 모아둔 빈병들이 떠올랐다. 포옹하던 엄마를 뿌리치고 나는 마당으로 향했다.

마당 한쪽에 나의 보물창고 쪽으로 달려가 모아놓은 빈병을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스물 하나.”

빈병 하나에 오십 원. 스물한 병을 모았으니 금액으로 하면 일천오십 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어쩌지… 평소 지랄 같은 내 성격 탓에 다른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려 해도 신용불량자라는 이유로 빌려주지도 않는데. 막막했다.

그때 출근을 했어야 하는 내 하나뿐인 여동생이 집 밖으로 나왔다.

“응? 너 왜 출근 안했어?”
“오늘 휴가야. 오빠는 웬일로 방에서 나와 거기에 있어? 또 빈병 주서?”
“아니, 그냥. 공기가 좋아서.”

국민체조를 하며 동생에게 조차 꿀리고 싶지 않은 핵존심을 부리고 있다. 가시나… 오빠가 이렇게 놀고 있으면 엄마 몰래 용돈 줌 주고 하지. 매정한 년… 쉬는 날이라고 밖에서 사적인 일을 보겠다며 나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한없이 갈망했다.

‘동생아, 동생님. 오빠 돈 좀 주세요….’

돌아보지도 않고 대문 밖으로 향하는 여동생이 왜 이렇게 얄미운지… 걸어가다가 개똥이나 밟아라! 내가 너를 동생이라고 생각한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들이 너무 후회스럽다. 에라이, 못된 가시나. 라고 속으로 말하는 순간, 여동생이 자리에 멈춰 나를 쳐다본다.

“오빠.”
“응?”
“부탁 한가지 들어줄래?”
“부탁? 뭐?”
“요기 앞에 세탁소에서 내 옷 좀 찾아줄 수 있어? 밖에 나가는 거 싫어하는 오빠가 들어줄리 없지만.”
“야! 내가 무슨 심부름꾼이냐?!”

라고 소리치는 순간, 동생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들며 나에게 보여준다. 동생이 보여준 만 원짜리 한 장과 바람에 흔들리는 돈의 유혹은 어떠한 애로영화보다 달콤했다.

“…하지만, 우리 동생을 위해 찾아다 줄게.”
“정말?”
“그럼 나 오빠야, 오빠. 하하하.”
“웬일이래? 아무튼 고마워. 그리고 잔돈은 오빠 용돈 해.”
“고마워.”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물론 동생의 돈을 몰래 슬쩍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잠깐 신용대출로 빌려 사용하겠다는 것이지. 나중에 오빠가 돈 많이 벌면 이 돈에 열배, 백배로 갚아 줄게. 동생아 너무 걱정하지 마.

대문을 나서고 골목길로 걸어가는 동생을 보며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손을 격하게 흔들어 준다. 정말 고맙다는 마음을 나 혼자 느끼며 동생하나는 잘 뒀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원래 다중인격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집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동창회에 갈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향하고 며칠째 씻지도 않은 나의 머리와 얼굴에 고양이 세수를 하며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면도했다. 거울로 비추어진 나의 모습은 나름 쾌남이었다. 쾌쾌한 홀아비 냄새가 나는 내방으로 돌아와 옷장을 열고 몇 벌 없는 옷들을 바라봤다.

“음, 이 옷은 지난달에 세탁을 했으니 냄새가 안날 것이고.”

동창회를 가기 위해 최선의 아이템을 골라 멋을 부리고 파리만 가득한 나의 빈지갑에 은행 체크카드를 챙겨 꽂아주며 콧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아, 기다려라. 내가 곧 너희들과 함께 멋진 술 한 잔 기울이기 위해 나타날 것이다. 푸하하.

내방을 나서려는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마지막 의식 한가지가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내방으로 들어가 책상위에 놓인 스킨을 집었다.

“그렇지, 남자의 마지막 향기. 미스터~ 쾌남!”

유통기한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스킨 병을 흔들어 내 한 손에 잔뜩 부어 크리스마스이브 하는 나 홀로 집에의 캐빈처럼 양손을 내 얼굴에 비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캐빈이 하는 행동을 거울을 보며 흉내도 내보며 자기만족에 심취했다.

마지막은 썩은 미소를 보이며 누런 치아를 보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내 방문을 나섰다. 거실로 나오자 엄마가 나를 보며 왜 그렇게 꾸미고 나가냐고 어디를 가는 것인지 행방을 말하라고 한다.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너 엄마한테 거짓말 하는 것 아니지?”
“무슨 거짓말?”

엄마는 내가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곁눈질로 레이저를 쏘고 있다. 양심이 뜨끔거려 더 이상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빨리 이 집에서 탈출해야 했지만 엄마의 의심을 잔뜩 받고 있던 나이기에 쉽게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아직 엄마가 내가 부탁한 돈을 통장에 입금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서둘러 집을 나가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될 것 같았다. 다시금 엄마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다.

“친구 아프다고 병원에 있는데 아까처럼 그러고 갈 수는 없잖아.”
“어디 병원인데?”
“응?”

병원 이름이 뭐였지. 뭐라고 해야 하지… 고민고민고민….

“어, 뭐라고 했더라. 성규 알지? 성규랑 나가서 전화통화 해봐야 할 것 같아.”

내 또 다른 친구 한성규. 고등학교 동창인데 공부를 꽤 잘해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친구다. 우리 엄마는 성규라는 이름만 들으면 절대 믿음이 생기나보다. 잠시 의심하던 표정이 금세 밝은 미소로 바뀌며 조심히 다녀오란다.

“아들, 늦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
“응.”

짧은 대답 후 재빠르게 집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엄마가 뒤에서 다시 나를 부른다.

“잠깐, 성규도 아는 친구야? 고등학교 동창이냐?”

나는 당황스러워 대충 얼버무리기 위해 응이라고 대답했다.

“너 고등학교 때 사고뭉치라 그렇게 친한 친구도 없었잖아.”
“아니야, 나 친구 많아.”

젠장, 엄마가 별걸 다 기억하고 있다. 사실 무식하고 싸움만 좋아했던 나는 성규와도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다만 엄마에게 거짓말을 할 때 자주 사용했던 친구라 엄마는 아직도 나와 성규가 굉장히 친한 사이인줄 안다.

“아프다는 친구 누군데?”

최대의 위기가 여기서 찾아 올 줄이야. 고등학교 때 동창생들 이름을 기억해 내기 위해 현관문 앞에서 좋지도 않은 머리를 굴리느라 식은땀이 등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뜸을 들이면 들일수록 엄마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허… 허태옹!”
“허태옹? 그건 또 누구야?”
“고… 고등학교 때 친구 있어. 아무튼 다녀올게.”

급하게 엄마를 피해 집 밖으로 나가는데 엄마가 다시 한마디 했다.

“돈은 입금했고 분명히 말하는데 다음 달까지 돈 안 갚으면 끝이야, 넌!”
“알겠어!”

다행이다, 돈은 입금 됐단다. 밀거래를 하고 거래가 성공하듯 다급하게 엄마를 피해 동창회가 약속된 그 어딘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아직 전달 받지 못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동네 이곳저곳을 배회하게 되었다.

“이 자식, 왜 이렇게 안 알려주는 거야?”

휴대전화의 시계를 확인해 보니….

‘금요일 오후 1시 20분.’

아, 친구들은 모두 직장에 있겠구나. 내가 너무 빨리 나와 갈 곳이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만 깜빡거리며 갈 곳을 찾던 나는 우리 동네의 만화방이 떠올랐고 그전에 엄마가 보내준 이만 원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향해야 했다.

은행에 도착해 인출기 앞에 섰다. 오늘따라 사람이 굉장히 많이 있어 내가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사람들 줄 맨 뒤로 섰다. 내 앞에는 여섯 명이 먼저 줄을 서서 있었고 내가 일곱 번째 순서였다. 맨 앞줄에서 거래를 하는 아줌마는 웬 통장이 저렇게 많은지.

몇 개의 통장을 모두 정리하며 한참동안 시간이 흘렀다. 은행직원도 아니고 저 많은 통장에는 도대체 얼마가 들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돈 저렇게 많이 벌어 죽을 때 싸갈 것도 아니면서 대기하는 사람들 줄을 이렇게 길게 만들어 놓다니… 한심하다.

한참이 흘러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기계에 체크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누르려 할 때 누군가 내 옆에서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어떤 노숙자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아저씨가 내 비밀번호를 훔쳐보기 위해 이러고 계신건가 하는 생각에 통장잔고가 엄마가 보내준 이만 원이 꼴랑일 것이란 생각에 창피함을 느껴 손으로 비밀번호를 가린 채 눌러 몸으로 인출기계의 화면을 가렸다. 저 아저씨 왜 저러는 지….

나도 통장잔고가 궁금했다. 분명 0원일 것인데 엄마가 실수로 0을 하나 더 붙여 이십만 원을 입금해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래서 잔고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를 기대감 때문에.

삐-

“헉!”

통장잔고를 조회하자 엄마에게 이번 달까지 갚기로 하고 빌린 돈 이만 원… 이 아닌 이백만 원이 적혀 있다. 내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손가락으로 단위를 세며 다시 한 번 금액을 확인했다.

“일, 십, 백, 천… 백… 백만….”

엄마가 친구 병원비를 빌려 달라는 나의 말에 이백만 원을 보내 줄 것이었다. 내가 손가락 세 개 중 하나를 접었더니 이만 원이 아닌 이백만 원을 보내 준 것이다. 하긴, 병원비가 상식적으로 이만 원, 삼만 원 일리가 없지 않은 가…

내 머릿속에서 엄마의 육성이 들려왔다.

‘아들, 다음 달까지 갚아.’

손이 벌벌 떨렸다. 이백만 원을 모두 인출할 경우 나는 조절이 되질 않아 모두 다 쓰고 잔고 없는 신세가 되어 엄마의 핵주먹에 맞아 죽을 것인데… 좋아, 이만 원만 빼서 쓰고 나머지는 통장에 뒀다가 빈병을 열심히 모아 이백만 원을 엄마에게 돌려줄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내 통장잔고를 훔쳐보던 노숙자 같은 아저씨가 군침을 흘리며 내 쪽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도둑인가? 강도? 어떻게 하지… 저항해야 한다. 침착하게 당황하지 말고… 나는 그 아저씨의 손을 치며 최대한 무서운 얼굴 표정으로 노려봤다.

“저기… 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한다. 협박? 혹시… 살해 위협?! 심장이 벌렁벌렁이며 맥박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주변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를 쳐야 하나. 어쩌지… 명색이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인 내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면 웃겨 보이지 않을까.

혼자 힘으로 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그 아저씨에게 말을 했다.

“저리가요! 왜 이러세요!”
“저기… 그러니까… 저….”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저기….”

내 쪽으로 그 아저씨가 손을 옮기자 내 돈을 인출해서 빼앗으려는 행동으로 인지하고 그 손을 막기 위해 저지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의 한쪽 손이 예금인출 버튼을 눌렀고 기계는 내 통장의 돈을 세기 시작했다.

“안 돼! 내 돈!”

몸을 던져 돈이 나오는 입구를 지키며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여기 강도가 제 돈을 훔쳐가요! 경비!”

순식간에 사람들이 내 쪽을 바라보며 내가 위험에 쳐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내 돈을 지켜야 했다. 돈이 나오는 곳의 뚜껑이 열리자 현금이 보이고 손으로 저항하며 내 돈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내 돈! 안 돼! 도와주세요!”

몇 만원을 내 손에 쥐고 바닥에 쓰러지며 발버둥을 치고 있는 나를 누군가 붙잡았다. 나를 붙잡고 있는 사람을 쳐다보니 은행 경비원이었다. 안도가 되었다. 노숙자 같아 보였던 아저씨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가 생겼다. 그러면서 은행 경비원 아저씨가 하는 말.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네?”

바닥에 누워 발광하는 나에게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하는 은행 경비원. 인출기계를 보니 내 옆에 서있던 아저씨가 기계 한쪽 구석에 있던 짐 가방을 조용히 들고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누워 있는 나를 보고 말한다.

“이거 아까 제가 놓고 가서… 가방 좀 달라고 한 것 인데….”

은행의 모든 직원과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뻘줌함을 느낀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계에서 나온 내 돈을 집어 들고 헛기침을 하며 목례를 하고 은행을 빠져나갔다.

쇼를 했다는 생각에 돌아선 내 얼굴이 민망함으로 변했고 인중이 접히며 울상을 지었다. 그렇게 나의 원맨쇼를 끝내고 은행 앞에 있는 자판기 앞에서 쭈구려 앉아 은행 바닥 청소를 한 대가로 입고 있던 옷은 더러워졌음을 알았다.

딩동-
휴대전화에 문자가 한통 왔다. 문자를 확인해보니 동규였다.

‘오늘 저녁 7시, 시내 퓨전술집.’

저녁 7시, 현재 시간 오후 2시 30분. 네 시간 반이나 남았다. 많이도 남았네…. 시간은 왜 이리도 흐르지 않는 것인지. 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하나 주서 라이터로 필터부분을 소독하고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쓰읍, 후~”

그렇게 은행 앞에 앉아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한심한 놈인지 느낄 수 있었다. 매일 같이 방에만 있던 나는 차츰 사회성을 잃어가는 듯 했지만 본능적으로 내 돈과 재산을 지키는 방어본능은 오해와 집착으로 변해가는 듯 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동네 만화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은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 도착한 만화방.

‘주인사정으로 오늘만 쉽니다.’

뭐냐 이건. 매일 같이 영업하던 만화방이 왜 오늘만 영업을 쉰다는 건지… 주인아저씨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 오늘만 쉰다는 건지… 나는 그 만화방 앞에서 멍하니 몇 분을 서있고 혹시나 주인아저씨가 아무도 모르는 사정이란 것이 잘 해결되어 문이라도 열어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동네를 배회하고 있던 중 오래된 오락실이 보였다. 저 오락실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있던 오락실로 주인아저씨가 알콜 중독자이다. 주머니에 돈도 있겠다 오락실을 가기로 했다.

오락실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생 한 명만 있는 오락실이다. 요즘 누가 오락실을 가는가. 모두 PC방으로 가겠지. 오락실 안의 게임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어릴 적의 향수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비행기 게임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게임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즐겨했던 것이라 손이 갔다. 동전을 바꾸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그리고 만 원을 작은 구멍 안으로 집어넣으니 술에 취한 주인아저씨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 바꿔줘?”
“아니요, 천 원 만요.”

그리고 내 손에 백 원짜리 동전 열 개와 천 원짜리 아홉 장을 준다. 주인아저씨는 많이 하고 가라며 동전을 많이 바꾸지 않은 나를 보고 맘에 안 드시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저씨를 뒤로 하고 아까 본 비행기 게임 자리에 앉아 동전을 넣었다.

찰랑, 찰랑.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는데 시작이 되지 않았다. 돈을 먹었나 하는 생각에 동전 투입구 부분을 보니 삼백 원이란다. 난 이백 원을 넣었는데….

“겁나게 비싸네.”

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 더 투입구에 밀어 넣었다. 이제 나는 비행사가 되어 적과 함께 대치를 할 것이고 나중에는 왕을 쳐부수는 최강의 탑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기계가 시작을 하지 않는다. 엄한 기계를 발로 찼다. 탕!

동전을 먹었다. 이 나쁜 기계. 자리에서 일어서 카운터로 향해 주인아저씨에게 동전을 먹었다고 말을 하자 기계가 동전을 어떻게 먹느냐며 도리어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 나는 진짜 억울한 마음에 나와 보시라고 하며 확인을 부탁했다.

투덜대는 주인아저씨가 비틀거리며 카운터에서 나오는데 이미 만취한 상태 같아 보였다. 슬리퍼를 신고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고 내가 하던 게임기 앞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아 오락을 하고 있었다. 아까 유일하게 혼자 있던 초등학생이었다.

“뭐야? 저기 게임 잘하고 있고만.”

어라? 저 초딩 녀석….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이지? 내 돈을 먹은 기계 쪽으로 이동해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어떻게 게임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녀석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말이…

“그냥 버튼 누르니까 시작하던데요.”

뭐라고? 그럼 내가 돈 넣고 네가 하고 있는 거란 말이냐. 아까는 분명 ‘Insert coin’이라고 떴는데 어떻게 된 일진지 몰라 당화하는 나를 뒤로 하고 주인아저씨가 혀를 차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간다. 미쳐버릴 일이다. 황금 같은 내 돈…

다시 한 번 차분히 다른 오락기를 찾았다. 어렸을 때 즐겨하던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오락이 눈에 들어왔다. 향수에 젖어 오락을 하기로 결정하고 동전구멍에 최대한 신중히 동전을 넣었다. 공손하게 두 손으로 차곡차곡 동전을 넣고 화면을 보니 실행이 가능했다.

나는 오락의 캐릭터들 중 캔을 주로 했던 기억이 났다. 조작방법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손가락이 자동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첫 라운드를 ‘춘리’라는 여자 캐릭터와의 싸움. 덤벼라~ 내가 너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주리라!

“와따따 뚜겐~ 어류겐.”
“유 윈!”

크하하! 이런 피라미들. 나에게 목숨을 담보로 덤비다니… 불쌍한 마음에 안쓰럽구나. 혼자 신나하며 오락에 심취해 있고 이제 최종 보스만 남은 상황이다. 몇 십 년 만에 마지막 보스를 깰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오를 때였다.

띵동-

“응? 누구야?”

누군가 나에게 도전을 신청했다. 내 반대편에 그 누군가가 마지막 보스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할 줄이야… 후후… 아작 아작 씹어 먹어주마. 상대는 미국 공군 가일이란 캐릭터를 선택했다.

상대를 알지 못하고 대결하게 된 싸움, 이것은 나에게 전쟁선포를 한 것과 같은 의미였다. 나도 모르게 손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서로 앞으로 뒤로 왔다갔다하며 헛 발길질과 주먹질로 상대를 떠본다.

그러다 상대가 내 캐릭터 근접한 근처에서 점프를 시도했다. 나는 가차 없이…!

“어류겐!”

나의 기술에 넘어지는 타이밍에 우주의 정기와 태양의 기를 받아…!

“아도겐!”

장풍이 가일의 몸통에 적중한다. 상대의 에너지가 삼분의 일정도 달았다. 나의 힘은 이제부터 펼쳐질 계획이었다. 내가 상대의 에너지를 확인하는 찰라 비겁하게 공격을 해왔다.

“마데꾸!”

마데꾸의 일격에 나의 캔은 쓰러지지 않았다. 좋아! 그깟 마데꾸에 나의 캔이 나약하게 쓰러질 것 같으냐! 덤벼랏~! 하지만 순간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데꾸가 연속으로 발사되며 나의 캔은 그 자리에 쓰러지며 에너지가 반이상 줄었다.

피용피용피용-

나의 캔 머리에 별이 돌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잡고 있는 조이스틱을 정신없이 좌우로 흔들었다.

“안돼, 여기서 무너지면!”

신기한 것은 상대방의 가일은 쉬지도 않고 마데꾸를 날리고 있었고 나의 캔이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화면에 이런 글자가 나타났다. ‘YOU LOSS.

시팍… 버그가 있었구나. 특정스킬이 연속으로 발사되는 버그… 베일이란 캐릭터의 와리가리 전기구이만큼 무서운… 류와 캔이 사용하는 무한 어류겐만큼 무서운 마데꾸 연속 스킬 버그가 나의 캔을 무참히 쓰러트리고 있었다.

“뭐였지… 캔의 무한 어류겐과 아도겐을 사용할 수 있는 버그 방법. 떠오르지 않아!”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이번에 지면 마지막 보스를 목전 앞에 두고 허무하게 자리에서 일어서야 할 판이었다. 최대한 집중해서 상대의 버그 스킬을 이겨내야 했다. 그와 동시에 캔이 사용하는 버그 스킬 조작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마데꾸!”

앗! 상대의 마데꾸가 나의 캔을 공격한다. 하지만 조작 미스인지 연속 마데꾸가 아닌 단발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마데꾸를 방어한 나의 캔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앉아 차기를 시도하고 가일은 뒤로 넘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나의 캔은 아도겐을 발사!

“쳇, 젠장!”

나의 아도겐을 막아낸 가일이 반달차기로 캔의 정수리를 강타한다. 반달차기에도 굴하지 않고 바로 이어진 어류겐! 퍽퍽! 이 또한 막아낸 가일이 마데꾸를 날려 캔을 넘어트렸다. 서로의 에너지는 비슷비슷했다. 말 그대로 용호상박이었다.

그렇게 화면 뒤쪽으로 물러서는 나의 캔이 화면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자 나는 조이스틱을 흔들었으나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해 버튼들을 모두 누르며 어류겐을 사용했다. 순간 나의 캔이 버그 어류겐을 사용하며 화면을 날라 다니며 상대 가일을 격침할 수 있게 되었다.

뜻 밖의 발견이었다. 이로써 상대와 전적은 일승일패. 이제 마지막 라운드를 남겨 놓고 있는 상황이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버그 스킬이 없이 나와 상대하면 게임도 안 될 사람이 보스 마지막 판을 두고 대결을 신청하다니. 후후… 나의 진짜 쓴맛을 보게 해주겠다.

“라운드 쓰리, 레디~ 파이트!”

드디어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지난 경험들을 떠올리며 단순무식하지 않고 계획되며 계산된 공격을 통해 효과적인 싸움을 예상하였다. 하긴, 버그 스킬로만 나를 상대하려는 너의 그 단순함을 무참히 짓밟아 주겠다는 신념으로 라운드에 임했다.

“마데꾸! 마데꾸! 마데꾸! 마데꾸! 마데꾸! 마데꾸! 마데꾸! 마데꾸! 마데꾸! 마데꾸! 마데꾸!”
“으아아아아아아악!”
“YOU LOSS.”

뭐… 뭐… 뭐야… 지금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무한 마데꾸에 당하다니… 나는 지금 신사답고 지략가적인 전술과 전략을 구상하며 깔끔한 페어플레이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상대는 그런 것조차 없는 잔인한 해적과도 같았다.

분노가 차올랐다. 어떤 자식인지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다. 말없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오락실 밖으로 나가는 문 쪽으로 향하다 말고 무서운 눈초리로 뒤를 돌아 나와 상대한 녀석을 확인했다.

“응? 저 초딩 자식!”

내 동전 삼백 원으로 공짜 오락을 하던 초딩 녀석이 나와 상대한 버그 플레이어라니… 애초당시부터 이 오락실에 있는 성인은 나밖에 없었다. 새로운 사람이 이런 후진 곳에 와서 오래된 게임을 할지 만무했다. 그런데 왜지? 왜 이렇게 억울하고 눈물이 나오려하지…

“ㅠ_ㅠ”

나는 아쉬움과 허망함을 뒤로한 채 터벅터벅 약속된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천천히 가면 비슷한 시간 내에 도착할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내 앞에 미모의 여자가 한 명 보였다. 뒷모습으로 미모를 판단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긴 생머리에 스키니 청바지, 남자의 마음을 흔드는 샴프 냄새와 향수.

그녀의 정수리가 보이며 정신을 잃은 채 계단 밑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돌아서며 나에게 ‘저 오늘 한가해요’라고 말해 줄 듯한 나만의 오해… 하지만 이럴 때 사람들은 안전의식이 사라진다. 그녀의 정수리만 보며 걷던 나는 발을 헛딛으며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넘어지는 위치도 하필 그녀의 등 뒤였다. 등 뒤로 넘어지며 내 코가 정수리 쪽으로 향했다. 순간 그녀의 비명소리와 함께 내 코로는 상큼하고 기분 좋은 여자의 샴프 냄새가 후각의 모든 신경감각을 자극하고 있었고 그 자극으로 인해 나도 모르는 미소가 얼굴을 채웠다.

“꺅!”

쿵! 그녀의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정신 나간 듯한 나의 미소가 보인 상태에서 그녀와 함께 샌드위치와 같은 모습으로 지하철 계단 중간부분에 쓰러지게 되었다. 주변에서 우리의 장면을 본 사람들이 식겁한 표정으로 ‘많이 아프겠다. 정말 아플 것 같아’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정말 아픈 사람은 내가 아니고 그녀였겠지만…

그녀는 바닥을 보고 쓰러져 있었고 나는 그녀의 등에 위로 짜부. 어떤 상황인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나는 그녀의 등 뒤에서 서둘러 일어섰어야 했지만 그녀의 정수리에서 풍기는 향에 취해 한동안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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